본문 바로가기
경제공부

정규분포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장의 위험

by 크바시르 2025. 12. 27.

1. 모델링과 현실의 간극

복잡한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 인간은 현실을 단순화한 모델을 사용한다. 모델링이란 현실의 대상이나 현상을 특정 목적에 맞게 추상화하고 단순화해 표현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직접 실험이 어렵거나 위험한 상황도 간접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천동설과 지동설, 전염병 확산 예측, 기상 모델, 금융시장 분석까지 대부분의 과학적·공학적 접근은 모델링에 기반한다.
모델 구축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포함되는 가정과 단순화는 현실을 계산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는 핵심 도구이다. 현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목적에 부합하는 가정이 설정되면 모델은 충분한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현실의 복잡성, 비선형성, 예외적 상황은 불가피하게 제거된다. 문제는 이러한 가정의 존재를 잊고 모델 결과를 현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마찰이 없다고 가정한 물리 법칙을 실제 도로 위의 자동차에 적용하면 사고가 난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모델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자동차는 멈추지만, 계좌는 삭제된다. 모델은 결론이 아니라 언제든 폐기 가능한 가설일 뿐이다.
 

2. 정규분포 가정과 금융시장

금융이론에서는 오랫동안 자산 수익률이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가정이 널리 사용되어 왔다. 정규분포는 수학적으로 다루기 쉽고, 평균과 분산이라는 소수의 파라미터로 위험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평균회귀, 분산 기반 위험관리, 포트폴리오 이론 대부분이 이 가정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는 정규분포가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빈번하게 극단적 변동이 발생한다. 폭락과 폭등은 통계적으로 “극단값”으로 처리되지만, 현실에서는 시장 구조를 바꾸는 결정적 사건으로 작용한다. 정규분포 가정은 이러한 극단 변동의 발생 확률과 영향을 구조적으로 과소평가한다.
1998년 LTCM 사태는 이러한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설계한 고도로 정교한 수학 모델을 사용하던 이 펀드는 모델상으로는  '우주가 멸망할 확률'보다 낮은 사건에 대비하지 못했다. 러시아 금융위기 이후 시장이 급변하면서, 단기간에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잃었고 결국 시스템 리스크로 번졌다. 이 사례는 정규분포 기반 위험 관리가 극단 상황에서는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3. 블랙 스완과 극단 사건의 인식

나심 탈레브는 블랙 스완 이론을 통해 기존 금융 모델이 간과해온 극단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블랙 스완이란 발생 확률은 극히 낮아 보이지만 일단 터지면 시스템을 파괴하며, 사건 종료 후에는 온갖 전문가들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며 숟가락을 얹는 사건을 뜻한다. 발생 전에는 모두가 침묵하고, 발생 후에는 모두가 예언자가 된다. 
탈레브의 핵심 주장은 정상적 가정, 특히 정규분포 기반 모델로는 이러한 사건을 사전에 포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중요한 극단 사건의 확률은 유한한 데이터로는 신뢰성 있게 추정할 수 없으며,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위험 계산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추수감사절 전날까지 목이 잘리지 않았으므로 인간은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 칠면조가 그 좋은 예시이다.
다만 블랙 스완 이론은 "조심해라, 죽을 수도 있다" 는 개념적·정성적 경고에 머문다. 시장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히 드러내지만, 구체적인 확률 구조나 수치 모델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위험의 존재는 인식하게 되지만, 이를 어떻게 계량화하고 전략에 반영할지는 여전히 남는 문제다.
 

4. 멱법칙(Power Law) 분포와 정량적 접근

블랙 스완이 극단 위험의 존재를 각인시켰다면, 멱법칙 분포는 이를 정량적으로 다루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멱법칙 분포는 확률이 값의 크기에 따라 거듭제곱 형태로 감소하며, 정규분포에 비해 훨씬 두꺼운 꼬리를 가진다. 꼬리 지수 k가 작을수록 극단 사건의 발생 확률은 급격히 증가한다.
$$  y=a x^{-k} $$
$$  log(y)=-k log(x)+log(a) $$
멱법칙의 중요한 특성은 척도 불변성이다. 관측 규모가 달라져도 분포의 형태가 유지되며, 로그 스케일에서는 직선으로 나타난다. 이는 극단 사건이 특정 규모에서만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규모에서 구조적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지진의 규모와 발생 빈도 사이의 관계는 멱법칙의 대표적 사례다.

법칙: 규모가 1 커질 때마다 지진의 발생 빈도는 약 10배씩 감소함
예시:
  - 규모 4의 지진이 1년에 1,000번 발생한다면,
  - 규모 5(규모 4의 10배 규모)의 지진은 약 100번,
  - 규모 6(규모 4의 100배 규모)의 지진은 약 10번 발생함

 
규모가 커질수록 발생 빈도는 급격히 줄어들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금융시장에서도 큰 변동은 드물 뿐이지, 통계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니다.
탈레브가 말한 “언젠가 발생할 큰 사건”에서 가장 불편한 부분은 그 시점과 빈도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멱법칙 분포는 이 공백을 일정 부분 메운다. 꼬리 지수를 추정함으로써 극단 변동의 상대적 빈도와 규모를 수치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표본 한계와 추정 오차는 존재하지만,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정규분포의 거짓말보다는 "생각보다 자주 망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멱법칙의 비관론이 훨씬 마음에 든다.
 

5. 실제 시장 데이터의 특성

1970년부터 2025년까지의 S&P500 일간 변동률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보았다. 중심부에서는 정규분포와 유사한 형태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단순 시각적 비교만으로는 정규분포 가정이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오른쪽 그림처럼 꼬리 영역을 확대하면 차이는 명확해진다. 정규분포로 가정한 경우와 실제 발생빈도를 비교하면 일변동 2%인 경우 정규분포는 14일, 실제론 5일마다 발생하는데 이정도는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변동 5% 수준은 거의 1년마다 한번씩 발생했지만 정규분포로는 자그만치 110년에 한번 발생할 수준이 된다. 일변동 8%가 되면? 실제론 약 13년에 한번 발생했지만 정규분포에 따르면 2천억년에 한번 발생할 수준이 된다.

S&P500 일간변동량

 
로그 스케일로 변동성과 발생 빈도를 표현하면, 큰 변동 구간에서 거의 직선에 가까운 패턴이 나타나는데 멱법칙적 특성을 시사한다. 이 추세를 외삽하면 아직 관측되지 않은 수준의 극단 변동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사건으로 남는다. 이 기간 중에 실제 발생한 적이 없는 일변동 25%도 약 0.00001%, 즉 4만년에 한번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뭐, 4만년에 한번이면 무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식으로 정규분포가 “불가능”으로 분류하는 영역이, 멱법칙에서는 “매우 드문 사건”으로 재정의된다.

 

아래 그래프는 주식과 무관한 내 직장에서 발생하는 제품의 특정 결함실적을 멱법칙에 따라 로그 스케일로 그려본 것이다. 위의 S&P500 로그스케일과 상당히 비슷한 패턴을 보이며 멱법칙이 아무 상관없는 현상에 대해 동일하게 통용된다는 점이 재미있다.

6. 결론: 평균이 아닌 꼬리를 관리한다는 것

블랙 스완 이론과 멱법칙 분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문제를 바라본다. 블랙 스완은 예측 불가능한 극단 사건의 파괴력을 강조하고, 멱법칙은 그 발생확률과 영향을 정량적으로 모델링한다. 두 관점을 결합하면 시장 위험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규분포는 평균적인 상황에서는 유용하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장기 성과와 생존 가능성은 대부분 평균이 아닌 극단에서 결정된다. 큰 손실은 드물지만 한 번 발생하면 모든 것을 바꾼다.
따라서 투자와 위험관리의 핵심은 평균 수익률의 최적화가 아니라, 꼬리 위험에 대한 구조적 대비다. 정규분포에 기반한 안일한 안정감보다는, 멱법칙이 암시하는 두꺼운 꼬리를 전제로 한 포트폴리오 설계가 현실적이다.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전략은 대체로 불편한 가정을 선택한다. 그리고 투자에서는 그 불편함이 종종 생존 비용이다.